확진·미확진자 모두 사용 가능…환자 관리·진단 시간 감소 등 호평
개발자 허준녕 대위 “의료 취약 국가들 생명 살리는 ‘생명앱’ 되길”
지난 3월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할 무렵. TV를 통해 대구·경북 상황을 접한 한 현역 군의관의 마음은 무거웠다.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들이 유행 초기 ‘중증도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목숨을 잃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행정분야 업무를 맡고 있어 코로나 현장에서 뛰진 못했지만, 의학과 ICT 기술을 접목해 동료 군의관과 환자들을 도울 방법을 궁리했다. 그에겐 의학적 지식이 있었고, 취미로 앱 개발 프로그램을 익혔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자체적으로 네 차례에 걸쳐 ‘코로나19 체크업 앱’을 만든 경험도 있던 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경험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전문적인 프로그래밍까지 혼자 하기에는 버거웠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혹시 프런트 엔드 프로그래밍을 도와주실 프로그래머 없으실까요? 제가 다 개발하려니 아무래도 손이부족해서…아무 보상도 없지만.’
선한일에 뜻을 함께 하려는 이들은 기대이상으로 넘쳐났다. 전문의료진부터 프로게이머, 마케팅, 동영상 제작자, 편집 디자이너 등 40여명이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나섰다. 원활한 회의를 위해 회의 공간까지 선뜻 내준 회장님도 있었다. ‘닥클(DOCL)’이라는 프로젝트 팀은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과 재능기부가 한데 모아져 그렇게 만들어졌다.
닥클을 이끈 이는 국군의무사령부 소속 허준녕(34·신경과 전문의) 대위. 그는 의사이면서 WHO(세계보건기구)가 인정한 앱 개발자이기도 하다. 그가 앞서 만든 ‘코로나19 체크업’ 앱은 지난 5월 WHO의 디지털 솔루션의 세번째 프로그램으로 등재됐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수정 보완을 마친 ‘코로나19 체크업’의 최종판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구글(Google)이 이 앱을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며 50만 달러(약 6억 원)를 조건없이 지원키로 약속했다.
구글도 반해버린 ‘코로나19 체크업’ 앱은 코로나 확진·미확진자는 물론, 의료진의 일손까지 덜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처럼 긴 추석 연휴를 보낸 후 코로나 감염이 의심스러울 때 병원이나 선별진료소에 바로 가지 않고도 스스로 진단해 볼 수 있는데다, 환자 관리와 진단에 필요한 시간과 노동력을 줄여줄 수 있어서다.
이 앱은 먼저 미확진자(일반국민)용과, 확진자용, 체크업 그룹스(CheckUp Groups) 서비스 등 크게 3분야로 나뉜다.
미확진자용 서비스(https://docl.org)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스러울 때 자신의 증상을 앱에 입력하면 선별진료소 방문 필요여부 및 대처방안을 안내해준다. 앱을 통해 입력한 데이터와 결과는 PDF 파일로 전송과 출력이 가능해 선별진료소 방문시 진료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허 대위는 “선별진료소에서 면담할 때 20여개의 증상을 물어보는데, 미리 앱에서 작성한 설문지를 제출하면 의료진들이 점검해야 할 과정을 한단계 줄일 수 있다”며 “일반인들 또한 앱을 통해 1차적으로 진단해 볼 수 있어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줄수 있다”고 설명했다.
확진자용 서비스는(https://covid.docl.org)는 환자가 기본 정보와 증상, 과거력을 입력하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예후예측 결과를 제시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질병관리청에서 제공받은 5000여명의 국내 확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한 AI 알고리즘을 통해 환자의 입원 필요 여부를 90%의 정확도로 예측한다.
허 대위는 “환자가 본인의 기본정보와 증상, 체온을 입력하면, 이에 따른 위험도를 평가해준다”며 “의료진과 연동된 경우에는 의료진이 회진을 돌지 않아도 환자의 상태를 비대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앱은 국군의무사령부 외상센터에서 도입해 테스트 중이며, 향후에는 지방자치단체와 생활치료센터 등 격리시설 내 도입 및 활용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마지막 체크업 그룹스 서비스(https://groups.docl.org)는 직장, 학교 등에서 개인의 건강상태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능이다. 출근 시 체온 등 자신의 증상을 앱에 입력하면 개인이 지정한 사람들과 자신의 건강상태를 공유할 수 있다. 체온이 높은 경우 빨간색으로 표시해 강조되고, 유증상 시에는 자신이 지정한 관리자에게 알림이 자동으로 전송된다.
이렇게 개발된 앱은 스마트폰과 개인용 PC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체크업 그룹스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닥클’이라고 검색하면 바로 사용이 가능하고, 이외에는 모든 플랫폼에서 접속 가능하도록 웹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요한 곳이 어디든 유용하게 쓰이면 된다는 그의 앱 개발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의대 재학시절인 2012년에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 시간을 재는 ‘스터디 메이트(Study Mate)’라는 타이머 앱을 만들어 당시 앱스토어 전체 판매순위 2위를 기록한 적 있다. 뇌졸중 환자들에게 주변 응급실 위치를 신속하게 안내해주는 앱 ‘뇌졸중 119’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강원도 야전부대에서 근무할때는 지휘관과 군의관이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야전 환자 관리 앱을 만들기도 했다.
허 대위가 이같은 앱을 수시로 만드는 이유는 의료가 ICT(정보통신기술)을 만났을 때 파급력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허 대위는 “어릴때부터 IT기술이 환자를 살리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고, 이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막강한 의료와 IT기술을 접목하면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도국에선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환자들이 의사가 아닌 보건관계자들 밖에 만날 수 없어 처치가 시급한 시급한 환자를 선별하고, 비대면 방식으로 관리할 수 코로나 체크앱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이 앱이 국내는 물론 의료 취약 국가들의 생명까지도 살리는 생명앱이 되면 더 바랄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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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수 기자 다른기사보기